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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메아리
용서는 두가지 방향에서 모두 그리스도인과 분리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즉 우리는 용서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며, 또한 그 이후 용서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라본다면 이는 보복과 원수갚는 일이 그 흐름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인류 역사가 죄인들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인의 삶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형제가 죄를 범하면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선심을 크게 쓰며 여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답하십니다. 이는 용서의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 18:21-22).

신학자 헬무트 틸릭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메아리이다.” 우리는 불의와 중상과 거짓과 술수와 증오와 복수심의 메아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메아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스스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죄인인 우리를,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11).

우리는 오늘 불의와 중상과 거짓과 술수와 증오와 복수심의 메아리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메아리가 되어 용서의 예술을 자아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작성자   BBN 성경대학    작성날짜  4/20/2017 3:45 PM
조회수  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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